12779 | 2016.09.20 |
올해 문득, 여름이란 계절이 이렇게 견디기 힘들었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덥다는 표현도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적도 근처의 어느 이국적인 나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날씨였습니다.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고 또 누군가는 아이를 등교시키는 매일의 전쟁 같은 아침. 모두가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구슬땀을 함빡 흘려가며 여느 여름보다 한층 치열한 나날을 버텨냈지요. 이런 날씨라면 가로수는 야자수로 바꿔야겠네! 아스팔트가 두텁게 깔린 삭막한 빌딩숲에, 싱그러운 파도 소리와 황금빛 모래사장에나 어울릴 법한 쨍한 태양이라니. 눈치 없는 날씨를 원망하며, 더위에 지쳐 다들 불평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8월의 마지막 주, 기세등등하던 여름도 모두가 구박하는 소리를 들었던 걸까요. 영원하기만 할 것 같던 계절이 지난 밤 사이 살금살금 어디로 가버렸는지. 청량해진 아침 공기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아, 드디어 가을입니다. 부쩍 높아진 하늘, 자연은 곧 저마다의 알록달록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고 뜨거웠던 시간을 견뎌낸 결실을 탐스레 맺어내겠지요.
사람도 그렇게, 가을이면 여름을 이겨낸 결실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피부를 보는 곳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계절이 지나갈 적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들이 바뀌는 것으로 한 해가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곤 합니다. 여름 내내 습진성 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가려움, 발진이 심해졌다고 하소연하는 이야기들이 원내에 가득했다면, 이제 건선 환자분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겠구나, 하는 거죠.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되면 시원해지는 온도에 더불어 습도 또한 내려가게 됩니다.
乾癬 , 이름에도 건조하다는 의미가 들어가는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가을에 맺히는 열매마냥 새하얀 각질이 심해지고 여기저기에 발진들이 심해지게 됩니다.
건선이라는 이 병, 원인이 뭘까요? 의학적으로 건선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낸 연구 결과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피부의 면역 세포인 T세포가 평소와는 다르게 과도하게 면역 물질을 분비, 각질 세포를 자극하여 자꾸만 과도한 각질이 증식되게 만들고 만성 염증성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즉, 면역 체계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혼란스러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차근차근 살펴보면, 이렇게 교란된 면역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첫째로 살펴야 할 것은 장 건강입니다. 갸우뚱하시는 분들을 위한 설명을 드리자면 한 마디로 면역 세포의 70%가 장 점막에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혈액 속 림프구의 B세포와 T 세포가 장 내에서 항체를 생성하고 체액성 면역과 세포성 면역을 활성화시키며 몸 전체의 시스템을 원활하게 지켜주는 것이지요. 면역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곧 장 건강에 위협이 되는 원인이 있다는 말이 되고, 가장 기본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매일 무엇을 먹고 있는지 입니다. 식품 첨가물이 가득한 인스턴트 식품이 좋지 않다는 것, 항생제와 호르몬 촉진제 등을 듬뿍 맞고 비인도적으로 키워진 육류 제품이 몸에 미칠 영향 같은 내용은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깊어가는 가을, 이 시기에 제철로 만날 수 있는 자연의 선물들 중 피부 질환에도 특별히 도움이 될 만한 기특한 녀석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우선, 녹두입니다. 9월과 10월이 제철인 녹두는 대표적인 해독제로 혈액을 맑게 해주는 효능으로 아주 유명한 식품입니다. 녹두는 류신, 라이신, 발린 같은 필수 아미노산의 함량이 풍부하고 아연, 칼륨, 철분과 같은 다양한 미네랄 성분으로 체내 독소를 배출하고 활기를 돋우는 역할을 해줍니다. 잘못된 식생활로 균형을 잃어버린 장과 더위에 지쳐 늘어졌던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 덩어리겠지요. 녹두의 어린 싹인 숙주로 섭취하는 것도 말할 필요 없이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로 추천 드리고 싶은 식품은 버섯입니다. 혈액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커 마치 몸을 싹 청소해준다고도 표현되는 버섯은 가을에 그 향과 맛이 가장 깊고 진해집니다. 엄청난 식이섬유로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 불필요한 찌꺼기를 흡착해 배출되도록 돕고, 다른 채소류들에서 섭취하기 어려운 비타민 B나 D와 같은 영양소도 풍부합니다. 가을에 버섯을 대하는 방법으로 가장 으뜸은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에 자연 건조시켜주는 것인데요. 버섯이 자연 햇살과 만나 비타민 D가 극대화되어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도와주고 암과 같은 질환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사랑스러운 식품이 됩니다. 식감이 졸깃해지고 풍미가 환상적으로 진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녹두와 버섯, 이 좋은 식품들을 함께 섭취하는 레시피라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요리는 녹두전, 빈대떡이 있습니다. 녹두를 불려 곱게 갈아서 숙주와 버섯을 더해 각종 넣고 싶은 재료를 조금씩 섞어 부쳐내면 훌륭한 제철 별미가 됩니다. 다만, 돼지고기를 더하고 많은 양의 깨끗하지 못한 기름에 튀겨내듯 만드는 시중의 빈대떡을 사먹고 속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아시겠지요. 내 몸이 반가워하고 좋아할 해독 빈대떡을 만드는 방법은 조금 달라야 합니다. 들뫼 자연음식 연구소의 평화가 깃든 밥상에서 만드는 채식 빈대떡을 소개해볼까 하는데요. 어렵고 복잡하지 않으니 찬찬히 시원한 가을의 여유를 즐기는 마음으로 따라 해보시길 바랍니다. 녹두는 충분히 불려 갈고, 숙주는 가볍게 데친 후 잘게 다져 물기를 꼭 짜내고, 쫄깃한 버섯과 고사리도 마찬가지로 반죽에 더해주세요. 버섯의 종류는 너무 고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느타리도 좋고 표고버섯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제철의 버섯으로 골라보세요. 반죽에 집에서 담근 김치와 깻잎 같은 향긋하고 입맛을 돋우는 재료를 더하고 천일염으로 간한 뒤, 소량의 현미유로 꼼꼼하게 반죽을 지져보세요. 이렇게 부쳐낸 빈대떡은 식초와 겨자를 푼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제철의 싱싱한 재료들이 주는 자연의 좋은 기운에 콧노래가 나오고, 먹는 동안 입에서 즐거운 식감과 고소한 감칠맛 그리고 식후의 속이 편안한 기분으로 이어지는 행복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건선의 원인이 되는 교란된 면역체계에 대한 설명에서, 면역세포의 70%가 장내 점막에 집중된 면역 세포들에서 나온다고 말씀드렸지요? 나머지 30%는 자율신경의 균형에 의한 호르몬 생성이 면역 기능을 좌우하게 됩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이루고 신경과 내분비, 면역계가 모두 안정되어 면역력이 높아지는 기전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며 스트레스가 적은 상태에서 원활해집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 상태, 부정적인 마음가짐이 아드레날린을 과하게 분비시키고 활성산소를 방출하고, 면역을 망치게 됩니다. 이 말인즉슨, 행복한 마음 또한 면역력을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지요. 장 건강을 위한 해독 음식을 만들고 먹는 시간에서 느긋한 행복을 느껴보세요. 그야말로 100%, 면역력 증강을 위한 만점의 레시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