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7 | 2024.05.30 |
비염으로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감기로 인한 코막힘, 콧물, 재채기 등으로 며칠 고생한 적도 있을 것이고, 아침 저녁 쌀쌀해지는 환절기에는 아침마다 재채기와 콧물, 코막힘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고개만 숙이면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흘러서 휴지로 코를 막고 지냈던 기억도 있습니다. 심한 분들은 코로 숨을 쉬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분도 계시고 심지어 냄새를 맡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비염약을 먹으면 잠시 편해지지만 금방 다시 돌아가서 반복되고, 비염약을 먹으면 졸림 등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지긋지긋한 비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염은 비강 내 염증을 의미하는데 보통은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 코막힘 등의 증상을 동반하면 비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콧물과 코막힘이 있다는 것은 비강의 점막이 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채기와 가려움증은 비점막이 자극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점막이 붓고 자극받아 발생하는 비염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비강의 역할을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1달은 살 수 있고 물이 없어도 1주일은 살 수 있지만 숨을 쉴 수 없으면 10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에 있어서 호흡은 중요합니다. 호흡은 폐 안의 3~5억 개의 ‘폐포’라는 작은 공기주머니에서 가스교환이 이루어집니다. 산소 이산화탄소가 직접 혈관에 닿아 확산을 통해 교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폐포는 마치 비눗방울처럼 너무나 얇고 섬세한 세포단층의 조직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조직은 조금만 건조해지거나 온도가 떨어지거나 이물질이 들어오면 금방 망가지게됩니다. 결국 코에서 폐포 전까지의 유일한 중대한 역할은 ‘폐포에 손상을 주지 않는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강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기가 차면 비강의 점막 혈류량을 증가시켜서 덥히고, 공기가 건조하면 점막의 수분량을 증가시켜서 습하게 만들고, 이물질이 많으면 코털로 거르고 점막층에서 끈끈하게 붙잡고 면역세포를 출동시켜 이물질을 중화시켜야합니다. 공기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도 들어가려고 하면 공기의 흐름을 막아서 그 속도를 늦춰야 하고 그래도 이물질이 들어가려고 하면 강한 내뱉는 힘으로 밖으로 보내야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콧물, 발적, 코막힘, 재채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비염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비강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같은 환경에서 큰 불편함이 없는데 왜 나만 유독 불편한 증상을 겪는지, 비염으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을 참아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비염의 불편한 증상이 유달리 심한 것은 주어진 환경에 비해서 비강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금방 공기를 데울 수 있고 금방 공기를 습하게 만들 수 있고 금방 이물질을 거를 수 있다면 증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강에서 애를 써도 부족하다면 더 증상은 심해지고 지속될 것입니다. 엔진이 작은 소형차가 언덕을 넘으려고 할 때 매연이 쏟아지고 굉음은 크지만 속도는 안 나는 반면 고출력의 스포츠카는 악셀을 밟음과 동시에 부드럽게 언덕을 넘어가는 상황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비강의 힘, 엔진은 무엇일까요? 바로 비강 주변의 ‘혈액 순환력’입니다. 즉 비강이 차다는 것은 혈액 순환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따뜻하다는 것은 혈액 순환력이 좋다는 것입니다. 혈액 순환력이 약한 어린 아이들이 비염을 달고 다니고, 운동량이 부족하고 실내 또는 책상에만 앉아있는 분들이 비염에 취약합니다. 실지로 이비인후과에서도 비염치료를 위해서 콧물을 말리고 비강 혈관을 수축시키는 약을 쓰기도 하지만 ‘네블라이져’라는 기계로 코를 따뜻하게 하는 치료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비강 점막과 혈관을 수축시키는 약을 오래 쓴 후 공기구멍을 커졌지만 오히려 비염은 심해지는 위축성 비염의 상황을 보더라도 공기 구멍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강의 혈액순환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의 비염치료는 호흡기 계통의 혈액순환력을 증가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감기에 있어서도 체표의 순환력을 증가시켜 땀을 내고 면역력을 증가시켜 바이러스를 이겨내듯이 비염 역시 체표 쪽의 순환력을 증가시켜 체열을 분출하고 면역을 증가시켜 염증을 개선시킵니다. 또한 폐의 기운을 증가시켜서 강한 심폐기능으로 강력한 엔진을 가지도록 도와줍니다. 비염 치료에 있어서 ‘패독산’이라는 체표 쪽 순환력을 증가시키는 처방과 ‘보중익기탕’이라는 폐의 기운을 돕는 처방을 기본으로 하는 변방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또한 코 주위의 ‘영양’과 같은 혈자리를 활용한 침치료가 비강의 혈액 순환력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최근 몇년간의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의 일상화로 비염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마스크가 숨쉬기는 불편하지만 이물질을 걸러주는 필터링을 하고 마스크 내에서 온도와 습도를 높여준 후 비강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비강에서 해야할 일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벗는 환경이 되어도 지긋지긋한 비염이 있다면 주변환경에 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물질, 먼지가 없는 환경,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환경으로 관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엔진을 가진 비강이 된다면 비염 고생은 훨씬 덜 할 것입니다. 즉, 비염 치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코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